본문 바로가기
건강

알벤다졸은 정말 기적의 항암제일까?

반응형

알벤다졸(대웅제약)
알벤다졸(대웅제약)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구충제인 '알벤다졸'의 효과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원래 알벤다졸은 기생충을 제거하는데 쓰이는 구충제인데 최근 이를 원래 용도와 다르게 암의 치료 또는 비염, 아토피와 같은 만성 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알벤다졸이 무엇이기에 구충의 목적 이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벤다졸은 어떤 물질인가요?

 

알벤다졸(Albendazole)은 광범위한 기생충 감염의 치료에 사용되는 벤지미다졸(Benzimidazole) 형태의 구충제입니다. 회충, 요충, 편충, 십이지장충과 같은 다양한 기생충에 효과적이며 안전하기 때문에 WHO의 필수 의약품 목록으로 포함되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구충제입니다.

 

알벤다졸 화학구조
알벤다졸 화학구조

 

알벤다졸의 화학적 구조식은 위와 같으며 IUPAC 명칭은 (5-(propylthio)-1H-benzimidazol-2-yl)carbamic acid methyl ester 입니다. 분자식은 C12H15N3O2S이며 분자량은 265.34, 녹는점은 208°C도 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벤지미다졸의 화학구조인데 둘을 비교해 보시면 알벤다졸은 벤지미다졸의 2번 및 6번 탄소에 다른 작용기가 삽입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알벤다졸은 대부분의 유기용매와 물에 대한 용해도가 낮아 체내로 잘 흡수되지 않으며 흡수 후 간을 통해 알벤다졸의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알벤다졸 설폭사이드(Albendazole Sulfoxide)로 신속히 전환됩니다.

 

벤지미다졸 화학구조
벤지미다졸 화학구조

알벤다졸의 구충 원리 

 

알벤다졸은 기생충의 튜불린(Tubulin)에 대한 친화력이 크기 때문에 튜불린의 중합을 억제하고 미세소관(microtubule) 변형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미세소관은 모든 세포 내에서 세포의 분열, 세포의 운동, 세포 내 물질 이동, 세포의 형태 유지와 같은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튜불린과 미세소관
튜불린과 미세소관

 

그런데 미세소관의 변형이 일어나게 되면 기생충의 포도당 흡수가 저해되고 글리코겐 저장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기생충이 에너지 생성을 할 수 없게 되어 구충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구충효과는 알벤다졸 고유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알벤다졸을 구성하는 벤지미다졸(벤젠과 이미다졸)의 화학적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따라서 알벤다졸 뿐 아니라 다른 벤지미다졸 유도체인 펜벤다졸, 메벤다졸, 옥시벤다졸, 플루벤다졸 등의 구충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위와 비슷한 원리로 기생충을 사멸시킬 수 있습니다.

 

알벤다졸의 복용법, 주의사항과 부작용 

 

▶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아메리카구충, 분선충 등의 기생충 감염에 사용됩니다.

▶ 요충이 경우 1 1(400 mg)을 투여한 다음 1주 후 1 1(400 mg)을 더 투여합니다.

▶ 회충, 편충, 분선충, 아메리카구충의 경우 1(400 mg) 단회 투여하며 혼합감염인 경우 1 1 (400 mg) 3일간 투여합니다.

 

2세 미만의 소아나 임산부에 대한 안정성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약할 수 없으며 간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반드시 의사와 상의 후 복용해야 합니다. 약제에 젖당(유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유전적인 이유로 갈락토오스 불내성, 흡수장애와 같은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복용하면 안됩니다. 덱사메타손(부신피질호르몬제), 프라지콴텔(구충제)와 같은 약과 함께 투여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알벤다졸 투여 시 흔한 부작용으로는 두통이나 간효소 수치의 증가가 있습니다. 이는 대체로 알벤다졸 투여 환자의 10% 이상에서 보고되는 부작용이며 그 이외 1~10% 정도의 비율로 어지럼증, 탈모, 복통이나 발열과 같은 부작용이 보고되었습니다. 그 이외 1% 이하로 드물게 급성 간부전, 신부전이나 홍반, 두드러기가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알벤다졸이 갑자기 만병통치약이 된 이유 : '펜벤다졸'

 

펜벤다졸 알벤다졸 구글 검색어 트렌드
펜벤다졸 알벤다졸 구글 검색어 트렌드

 

사실 펜벤다졸은 작년 가을까지 기생충의 감염에 효과가 있어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된 구충제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가을, 미국의 Joe Tippens라는 한 남성이 강아지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며 암을 치료하였다는 사실을 유튜브를 통해 주장하면서 펜벤다졸과 알벤다졸이라는 구충제가 급격히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조 티펜스의 인터뷰
조 티펜스의 인터뷰

 

펜벤다졸(Fenbendazole) 역시 알벤다졸과 같이 벤지미다졸 유도체의 한 종류로 화학적 구조는 알벤다졸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펜벤다졸과 알벤다졸의 화학구조적 차이는 벤지미다졸의 6번 탄소 자리에 propylthio기가 아닌 phenylsulfanyl기가 붙어있다는 것입니다.

 

펜벤다졸 화학구조
펜벤다졸 화학구조

 

일부 암환자들은 과거 동물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 펜벤다졸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하였고 몇몇 암 환자들이 유튜브 또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항암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게 되면서 '펜벤다졸은 기적의 항암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펜벤다졸은 정말 항암효과가 있을까?

 

펜벤다졸은 세포분열에 필요한 미세소관의 활성을 강력히 억제하고 변형을 일으켜 세포 증식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기생충인 선충류에 대한 펜벤다졸의 세포증식 억제 효과는 포유류에 대한 세포증식 억제 효과에 비해 25 ~ 400배 가량 크기 때문에 정량 사용하는 경우 목적 동물에는 해가 없으면서도 기생충만 제거할 수 있어 안전하게 구충제로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펜벤다졸이 포유류인 사람에게도 세포증식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펜벤다졸의 복용을 통해 암을 치료했다는 환자는 위와 같은 원리로 펜벤다졸이 암세포와 같이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들을 분열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였기 때문에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시판중인 벤다무스틴(Bendamustin, 상품명 심벤다)이라는 항암제는 '벤지미다졸' 유도체 중 하나로 펜벤다졸과 같은 체내 세포증식 억제 특성을 이용하여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를 억제하는데 사용됩니다.

 

벤다무스틴 화학구조
벤다무스틴 화학구조

 

이러한 주장이 널리 알려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펜벤다졸이 품귀 현상을 빚게 되었는데 펜벤다졸은 동물 사용에 대한 근거만 있을 뿐 인간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결과는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항암치료를 목적으로 장기간 과량 복용 시 오히려 기형이나 암을 유발할 수도 있어 원래 목적과 달리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권고가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식품의약안전처에서는 현재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는 아래와 같은 주장들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과는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하였습니다.

 

1. 펜벤다졸의 실제로 항암효과가 있다? (X)

 - 현재까지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연구가 없으며 동물실험 결과 펜벤다졸의 복용에도 많은 부작용(간 종양)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1996년 및 2009)

 

2. 40년이라는 오랜기간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복용해도 안전하다? (X)

 - 동물에게 40년간 사용되었을 뿐,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다.

 

3. 체내 흡수율이 낮아서 안전하다? (X)

 - 체내 흡수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위해 장기간 고용량을 복용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 할 수 없다.

 

그렇데면 알벤다졸의 항암효과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펜벤다졸은 해외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약이 되어버려 사람들은 펜벤다졸의 대체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펜벤다졸과 같은 벤지미다졸계 구충제인 알벤다졸이 급격히 관심을 받게 됩니다. 이는 '알벤다졸이 종양세포의 증식을 강력히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2011, 연세대 김영태 교수의 연구보고서가 온라인을 통해 널리 공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세대 김영태 교수 연구보고서
연세대 김영태 교수 연구보고서

 

연세대 김영태 교수 연구결과 요약문
연세대 김영태 교수 연구결과 요약문

 

온라인에서는 보고서가 '알벤다졸이 난소암 모델에 대한 암세포 억제 및 복수 형성 억제 효과가 있었다'는 동물 실험 연구결과이며 알벤다졸이 새로운 항암약물의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기에 복용해도 된다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씁니다. 하지만 저자인 김영태 교수는 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 '알벤다졸이 암세포를 직접 사멸시키는 건 아니 암세포가 혈관을 생성하는 인자(VEGF)를 억제해서 복수도 적게 하고 암의 성장을 억제해 암이 더 크지는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 것 뿐이다. 알벤다졸을 항암제로 먹으란 말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으며 만약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호도되지 않게 바로 잡아달라'는 인터뷰(중앙일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영태 교수의 바람과는 달리 알벤다졸이 펜벤다졸 대비 구하기도 쉬우면서도 그동안 사람에게 안전하게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더욱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결국 식약처와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지난 1 21, '구충제인 알벤다졸을 구충의 목적 이외에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히며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하였습니다알벤다졸의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가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해도 원래 구충을 목적으로 개발된 약이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정성 및 항암 효과성에 대한 어떠한 연구결과도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또한 단회(1또는 짧은 기간 복용하는 것만 허용된 약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복용할 시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벤다졸과 펜벤다졸은 정말 새로운 항암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알벤다졸과 펜벤다졸 사람 또는 동물의 구충을 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된 구충제입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모두 세포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지만 이러한 효과를 바로 인간에게 사용가능한 항암제로 연결시킬만한 후속 연구결과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가 발표된 것은 아닙니다. 즉 동물세포증식 억제효과 ≠ 인간항암제라는 것입니다.

 

의료관계자가 아닌,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구충제의 항암 효과는 정확하지 않으며 주관적이라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펜벤다졸 복용을 통해 3개월만에 암을 극복하였다고 주장한 미국의 환자도 펜벤다졸만 복용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면역항암제의 임상에 1년간 함께 참여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국내의 한 유튜버 또한 4기 직장암 진단을 받고 지난 9월부터 펜벤다졸을 복용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환우들이 직접 공유하는 후기 또한 변인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과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국립암센터에서는 구충제를 이용해 항암치료를 위한 임상실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 2주간 검토하였고 그 결과 '근거나 자료가 너무 없어 안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들이 유튜브 방송, 인터넷 후기 등에서 근거로 활용된 논문이나 자료를 검토한 결과 '임상시험을 진행할 만한 의학적 가치가 없었으며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는 입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효과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새로운 항암제로 가능성을 인정받으려면 반복적으로 유의미한 수의 환자가 참여하여 통계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까지의 자료만 가지고 임상시험을 하기에는 환자가 위험할 수 있으므로 윤리적으로 임상시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충제 사용에 대한 의학계의 단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알벤다졸과 펜벤다졸은 말기 암 환자들에겐 여전히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비염, 비문증, 아토피와 같은 만성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후기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항암요법으로도 효과가 없어 달리 어떠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이 최후의 선택으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은 그 절박한 심정이 잘 느껴지기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구충제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초기 암 또는 만성 질환의 치료 목적으로 구충제를 사용하는 지금의 상황이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 조금은 씁쓸하기도 합니다.

 

저는 의학 또는 약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짧은 제 지식으로 보기에 정말 펜벤다졸과 알벤다졸이 새로운 항암제 또는 비염, 아토피와 같은 만성 질환의 새로운 치료제로 사용되기에는 그 근거가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하지만 빈약한 근거,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초기 암 환자들이 원래의 목적과 달리 구충제를 복용하고 정상적인 표준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루 빨리 새로운 항암제가 개발되어 더 이상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댓글